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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책을 읽을까? 왜 독서를 해야한다는 강박을 느낄까?

 

Photo by  Kourosh Qaffari  on  Unsplash

라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는

일단 책은 왜 존재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책은 텍스트로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대화하거나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는 방식은 구어를 통해서 정보를 전달받는 방식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책과 대화 혹은 강의를 통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모두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각 매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어(대화, 강의) : 캐쥬얼하다.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접근성이 높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전달력이 떨어질수도 있겠다. 복잡한 주제를 이야기할때는 화자의 입장에서는 정리가 안된채로 전달될수 있고 정보의 손실이 많을 수 있다. (기억력의 한계, 감정이라는 장벽) 청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없으면 정보도 없다.

 

: 정리된 문장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좀 더 많은 정보를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나 설명들을 전달할 수 있다. 청자의 입자에서도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먼곳에 존재하는 작가 그리고 이제는 살고 있지 않는 작가와도 정보를 주고받을수 있다(단방향이지만)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는 여러가지 수단을 통해 전달된다. 각 매체와 수단은 각각의 그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각자의 포지셔닝 속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큰 카테고리로 본다면 영상, 대화, 텍스트와 같은 전달 매개에 따른 분류를 해볼 수 있겠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들어가보면, 예를들어 영상 카테고리 안에도 유투브, 영화, TV 와 같이 각각의 특징과 포지셔닝이 다르게 형성되어 있어, 실제로 제공하는 컨텐츠도 미묘하게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책을 읽을까? 왜 정보를 더 받아들일려고 하는 것일까?

결국에는 생존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은 결국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타인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이므로 더 많은 지식 더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순수 독서를 통한 유희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다들 공감하듯이 독서를 제외하고도 우리는 수많은 유희거리가 존재한다. TV, 게임, 영화, 자극적인 음식 등 수많은 즐길 수단들이 존재하고, 독서 또한 이들과 똑같이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점에서 경쟁요소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한다는 행위는 저비용 고자극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추가적으로 의식적인 노력이 들어갈수 밖에 없고 그런점에서 그 노력을 한다는 것은 어느정도 합리적인 절제를 통해 가능한것이고 이는 우리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Photo by  Serkan Turk  on  Unsplash

 

그런데 좀 모호하다. 책을 읽게 되면 무조건 똑똑해 지는것일까? 사회에서의 성공과 관련이 있는건가? 인생에서 몇권의 소설 또는 몇권의 자기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런 의심때문에 단순한 유희의 목적을 벗어난 독서의 목적에 대해서 회의감을 느끼고 독서에 대해 등한시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내 돈을 들여서(책 한권의 값이 결코 싸다고는 할 수 없다) 힘들게 고른 이 책 한권을 읽기 위한 경제적 비용과 시간이라는 비용에 비해 이 책이 내게 제공하는 효용이 더 큰 것일까? 확신할 수 없다. 

독서를 통한 혜택은 단기적이라기보다 장기적인 것이고,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당장 내 지금 직업과 관련된 기술서적이 아니라면 또한 실용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다시 왜 우리는 책을 읽어야 할까? 그것이 실용적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나는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의 대한 찬양' 에서 어느정도 힌트를 얻었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일부 발췌

"무용한 지식은 살구의 역사처럼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까지 개인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지식의 즐거움을 가능케해주는 것이 바로 "사색하는 습관" 인데 여기에는 게으름이 요구된다. 사람은 게으를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가벼워지고 장난도 치고 싶어지고 스스로가 선택한 건설적이고 만족스러운 활동들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타인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만이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만일 게으름 놀이 사변적 지식을 향유하는 능력이 그 자체로 인정받는다면 러셀이 제안한 개혁들이 수행될 수 있다. 게으름 찬양의 목적은 즐겁고 가치있고 재미있는 활동들을 누구나 자유롭게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데 있다"

 

꼭 실용적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질문자체가 틀릴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용적으로 보이는 행위(독서를 통한 사색)가 결국에는 더욱 가치있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도화선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